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다시 웃어도 괜찮을까요 · Memor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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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다시 웃어도 괜찮을까요

#펫로스 #기쁨과죄책감 #일상으로돌아가기 #반려동물애도

친구가 보낸 짧은 영상을 보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소리를 내어 웃다가, 곧 입을 다뭅니다. 조금 전까지 반려동물이 몹시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웃었을까 싶습니다. 재미있었던 장면보다 웃고 있는 자기 모습을 더 오래 돌아보게 됩니다. 누가 나무란 것도 아닌데 마음속에서 질문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 이제 그만 잊으려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기쁨이 잠깐 찾아왔을 뿐인데,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로 돌아온 듯합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뒤 다시 웃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웃음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닌데, 그것을 허락하면 함께했던 시간과 조금 더 멀어질 것 같습니다. 슬픔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안에는 여전히 관계를 지키고 싶은 바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매 순간 괴로움을 유지해야만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흔적이 오직 아픈 모습으로만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웃음 하나로 마음 전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점심이 맛있게 느껴졌다는 것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 짧은 경험에 ‘이제 더는 그립지 않다’는 결론까지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람이 시원하거나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순간은 그 순간의 사실입니다. 부재에 대한 마음을 취소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한 번의 웃음으로 내가 어떤 보호자였는지, 앞으로 얼마나 기억할지를 모두 판단하려 한다면 아주 작은 장면에 너무 많은 설명을 맡기게 됩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수의의료센터의 안내는 애도가 정해진 계획이나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잠시 즐거웠다는 이유로 오늘을 회복 완료로 표시하거나, 나중에 눈물이 났다는 이유로 그 즐거움을 무효로 돌릴 필요는 없겠습니다. 오전의 나와 저녁의 나는 서로를 반박하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 여러 일이 있었고, 각각의 순간에 다르게 반응했을 뿐일 수도 있습니다.

웃고 난 뒤 죄책감이 들면 곧장 설득해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 작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방금 웃었고, 지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그러니 나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판결을 덧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사실과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판단은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 날에는 꼭 따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경험을 조금 덜 가혹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말이면 충분합니다.

즐거움을 시험으로 만들지 않기

오랫동안 미뤄둔 음악을 다시 듣거나, 좋아하던 음식을 주문하거나, 친구와 짧게 산책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밝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즐겨보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기보다, 지금 원하는 만큼만 해보세요. 영화를 보다가 멈추거나 모임에서 먼저 나와도 됩니다. 무엇을 했는지보다, 하고 싶은 마음과 멈추고 싶은 마음을 둘 다 알아차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처음의 선택은 아주 평범해도 좋겠습니다. 햇빛 드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궁금했던 책 몇 쪽을 읽는 정도면 어떨까요. 여기에는 기분이 반드시 좋아져야 한다는 조건도 붙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를 마셨지만 여전히 무거운 날도 있고, 잠시 편안했다가 다시 보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시작한 활동이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그 시간은 내 하루에 작은 선택 하나를 돌려놓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시 취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내 일정표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웃어도 된다’는 허락마저 ‘이제 웃어야 한다’는 요구로 들린다면, 그 말에서 잠시 거리를 두어도 됩니다. 이 글 역시 기쁨을 회복해야 할 과제로 건네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쁨이 뜻밖에 찾아오는 날, 굳이 문밖으로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자리를 남겨두려는 것입니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안쪽의 시간

회사에서 일을 마치거나 약속 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마음속의 모든 일이 정리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상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은 내 안에서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었던 일을 내일도 똑같이 해내야 한다는 계약으로 바꾸지 마세요.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들쭉날쭉한 부분이 있다면, 필요한 도움이나 조정을 구체적으로 말해볼 수 있습니다. 해낸 일 하나가 도움이 더는 필요 없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주변에서 “이제 괜찮아졌네”라고 말할 때는 설명의 범위를 내가 정해도 됩니다. “오늘 같이 웃을 수 있어서 좋았어. 아직 보고 싶을 때도 많아”라고 짧게 말하거나, 지금은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전할 수도 있습니다.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모든 질문에 답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누군가 앞에서는 애써 웃고 있었다면 그 사실도 나중에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장면 하나가 내 마음의 최종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즐거운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고 싶을 때도 복잡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벌써 잊었다고 생각할까 봐, 사진 아래 긴 해명을 덧붙이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에 슬픔의 전 과정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올릴지, 가까운 사람에게만 보낼지, 내 사진첩에 둘지는 내가 정하면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웃는 표정을 공개한 대가로 관계의 깊이까지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아픔 말고도 남겨두는 일

함께 살았던 날들을 떠올리면 걱정하고 돌보았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엉뚱한 자세로 잠든 모습을 보고 웃거나, 간식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발걸음이 귀여워 한 번 더 바라본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웃는 일이 지금 가능하다면 그 표정을 굳이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은 즐거웠던 기억도 아프다면 억지로 꺼내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쪽이든 함께한 관계에는 슬픔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남겨둘 수 있습니다.

다시 기쁨을 느끼기 위해 반려동물이 무엇을 바랐을지 정답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매번 즐거운 일을 그 존재를 위한 행동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즐거움은 추억과 이어지고, 어떤 즐거움은 지금의 내 취향에서 새로 생길 수 있습니다. 새롭게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는 이유로 이전의 사랑이 밀려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했던 삶을 간직하는 것과 오늘의 나에게 무언가를 허락하는 일을 매번 둘 중 하나로 고르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에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도 잠깐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때 바로 편안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웃었다는 이유로 그날을 벌주듯 보내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쉬고, 생각나면 이름을 떠올려보세요. 즐거웠던 시간을 다시 슬픔으로 갚아야 한다는 계산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의 짧은 웃음과 오래 이어진 애정이 같은 생활 안에 머물 자리를, 지금 가능한 만큼 조금씩 내어주어도 괜찮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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